류큐 요리는 오키나와의 보물
- 19391940년생
- 마쓰모토 카요코(松本 嘉代子)
TIMELINE관련 연표
1939 |
농업 이민자로서 필리핀에서 생활하던 부모 밑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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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필리핀 다바오에서 가족과 함께 정글로 피란을 갔고,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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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가고시마현 가지키로 귀환한 후 이듬해 8월까지 오이타현에서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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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
아버지의 고향인 모토부초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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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나하로 이사. 친구의 13살 생일잔치에서 이남두치를 처음 먹고, 그 맛에 감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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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사가미여자단기대학부 가정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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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
도쿄 소재 국제쿠킹스쿨 사범과에서 학문을 닦아 요리교사 자격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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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선배와 고자시 고야(현 오키나와시 고야)에 고자 요리학원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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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
나하시에 마쓰모토 요리학원 개교. 류큐 요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리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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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일반사단법인 류큐요리보존협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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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증언
증언자 약력
마쓰모토 요리학원 원장. 류큐요리보존협회의 부이사장도 맡고 있다. 오키나와의 전통요리를 지키고 전수하는 요리연구가이며, 류큐 요리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건강히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오키나와현 문화공로상(예술: 요리)을 시작으로 다수의 상 수상. 2017년부터 오키나와현 ‘류큐요리전승인 류큐요리사 육성 강좌 사업’에서 강사를 맡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과 전후 인양
필리핀에서의 생활
필리핀에서 태어나 모토부에서 자랐습니다. 전쟁 전 오키나와에는 농지도 없고 오키나와에서의 생활이 매우 힘든 시기가 있어 필리핀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농지를 개간하고 필리핀 다바오에서 마 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5살에서 6살 정도였는데 내 집의 형태나 주변을 조금 기억하고있습니다. 당시 살던 집 주변에는 과일이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아보카도 나무였습니다. 그 주변에는 철조망 같은 것이 쳐져 있었습니다. 거기서 돼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카카오와 커피나무가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의 요리도 일상적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기름에 튀긴 바나나입니다. 튀기는 그 장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 때의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신맛이 나면서 정말맛있었습니다. 다양한 요리에 토마토를 넣었습니다. 조림이나 국물 요리에 토마토가 자주 들어갔습니다. 전쟁 중에는 우리가 살던 집에 처음에는 일본 통신대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언제든 거기서 대피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스부호의 뚜-뚜-뚜뚜-뚜-뚜-뚜-뚜-라는 소리의 감각까지 익혀버렸습니다. 매일 그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느 날 해질녘에 모두 함께 정글로 이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정글과는 달리 타무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희생됐다고 들었습니다. 매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식량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를 따라간 사람들은 거의 무사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로의 귀향
일본에 올 때는 먼저 가고시마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오이타로 가서 절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오이타현 우사군이라는 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보내고, 그 후 오키나와로 돌아왔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전후 생활과 나하
생계를 위해 나하로
그리고 모토부에 왔지만 그 당시 오키나와는 완전히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식량도 없습니다. 밭도 없는 것입니다. 원래 없는 상태로 필리핀에 갔기때문에 집터 안의 텃밭 만한 작은 밭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으로는 가족들이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도시로 가게 됐고 나하로 이사를 갔습니다.
전후 나하의 거리
소베에서 내려온 가이난이라는 곳에 신에이거리가 있고 그 신에이거리에서 내려간 곳에 있는 시장은 “위마치과”라 불렸습니다. 거기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가부강 위에 수상상가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수상상가에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신발을 만들어 팔고 어머니는 과일을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쌀을 팔다가 중간에 과일로 바꿔 그후 계속 과일을 팔았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신천지 시장이 있고 더 가면 식품만 취급하는 시장인 “시차마치과”'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공설시장입니다. 거기에는 나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에바루초와 이토만 등 교외에서 온 사람들과 멀리서 온 사람들도 가니난에서 버스를 내려 위마치과에 갔다가 시차마치과까지 가서 장을 봤습니다. 그래서 명절 등 연중 행사 때면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장사는 좁은 곳에서 했지만 장사를 잘 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조키(원형의 키)에 양말을 담아 가두에서 팔 수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마치과 주변은 각 지역과 외딴 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두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식량이 부족한 시대였습니다. 오키나와는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통조림 등이 있었지만 가정에서는 좀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얀바루에 있을 때는돼지를 잡으면 삼촌이나 이모가 나눠주곤 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
처음 먹어본 이남두치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얀바루(모토부초)에서 나하로 이사 와서 그 무렵 주산유에라는 열세 살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잔치가 있었습니다. 친구의 주산유에에 초대돼 대접을 받았는데 그 음식에 깜짝 놀랐고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남두치(돼지국밥)를 먹었습니다. 얀바루에는 이남두치는 없었고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어묵과 돼지고기와 표고버섯 곤약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흰 된장으로 진한 맛이 났습니다. 그것을 먹고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도쿄에서의 학생 생활
당시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커피나 코코아, 초콜릿 등이 풍부하고 오키나와에서는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본토로 가져가면 외래품이라고 해서매우 비쌌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도쿄의 오카치마치, 지금의 아메요코에 가져가 가져가서 팔면 외래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그것을 거기서 팔아서 생활비로 삼았습니다. 학교 수업료는 시계를 팔아서 충당했습니다. 당시에는 롤렉스보다 오메가 시계가 인기였습니다. 손목시계 하나 사서 가져가면 반년치 수업료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식문화의 차이를 알다
식문화 차이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된장일 것입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응나시루라고 하는 건더기가 조금 들어간 된장국을 먹었습니다. 그 대신 반찬등의 종류는 많았습니다. 당시 낫토는 그 냄새 때문에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가 없어서 거의 간장만으로 먹었습니다. 계란을 넣을 수 없었습니다. 먹어본 적 없는 채소도 꽤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장보기 당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재료를 사야 하는데 그 야채의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처음 보는 채소가 많았습니다. 먹는 것도 맛보는 것도 처음인 것이 많았습니다.
영양사로서 요리 지도하다
영양사 자격을 살린 일
처음에는 영양사 자격증을 따서 영양사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류큐 정부였는데 면허를 등록하러 갔더니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말을 듣고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양사 자격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을 때 그것이 바로 요리였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수강하던 분들은 나보다 훨씬 선배인 50대 전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잘 사는 분들이었지만 다시 류큐 요리를 다시 제대로 배우고 싶다거나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이어서 다소 꿀리기도 했습니다. 좀더 공부를 하고 다소 안정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도쿄로 가서 요리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영양사 자격도 살리면서 오키나와에 돌아온 후에 내가 할 수있는 일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요리 지도를 할 때는 영양사의 지식을 포함시켜 영양학과 조리과학을 활용하면서 요리 만드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요리를만들면서 약간의 시간이 있을 때 영양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시금치를 데칠 때 데치는 이유를 알려주는 식입니다.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데쳐서 사용한다고 지도했습니다.
고자의 요리 교실과미국 식문화
오키나와시에서 나하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영양사 선배와 함께 고야(현 오키나와시)에서 요리 교실을 열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일본계 2세 부인이나 주변 일대가 전부 기지였기 때문에 군무원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냉동식품이나 통조림이 많아 그것을 활용한 요리를 할 수 없을까 해서 때로는 수강생의 가정까지 찾아가지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가정의 식단을 보면 대부분 통조림이나 냉동식품이 많았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은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냉동식품과 통조림을 이용하여 식사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정부로 일하는 집도 많았습니다. 흑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정부로 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흑인 가정부는 요리를 정말 잘 했습니다. 물론 오키나와 가정부도 요리를 하지만 단연코 흑인 가정부가 더 잘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PX(Post Exchange 기지 내 매점)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군무원 등 기지 관계자를 따라 가거나 혹은 부탁하면 식료품을사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산 식료품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르되브르 즉 전채 요리가 인기였습니다. 파티 형식으로 축하연을 열 때는 오르되브르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오르되브르라는 단어를 지금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돼지고기도A로스(등심) B로스(목심)이라는 말을 씁니다. A로스, B로스라는 호칭은 오키나와현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 런치도 A・B・C 런치라고 합니다. 지금도 그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군정의 영향이 큽니다. 미군 공인 A사인이 있는 식당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갈 수 없었습니다.
오키나와의 보물 류큐 요리에 대한 생각
류큐 요리에 대한 생각
나도 점점 류큐 요리에 편향되어서 지금까지 계속 류큐 요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시야 (소면과 야채 등의 볶음 요리)와 같이 살짝 볶아서 완성하는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떤 재료를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일반적인 채소인 운체(공심채), 한다마, 양배추를 써도 좋습니다. 살짝 볶아서 마무리하는 것이 타시야이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참푸루입니다. 참푸루에는 두부가 들어갑니다. 두부와 제철 채소를 조합하여 살짝 볶아서 완성하기 때문에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경제적인데다 정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류큐 요리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류큐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나 지금은 류큐 요리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류큐 요리의 노포도 있고 궁중요리만 취급하는 가게도 있지만 그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먹으러 가지 않는데 가치를 알게 되면 먹으러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게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백 가지의 요리 중 200개 정도가 레시피로 남아있는데그것을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조금씩이라도 지금 어떻게든보급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식재료를 사용한 오키나와의 요리법을 '토산토법' 이라고 합니다. 그 땅의 산물을 사용하여 그 지역의 요리법으로 먹는 것이 우리 몸에 가장 좋습니다. 다만, 오키나와현은 관광이 주요 산업이기 때문에 우리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제대로 된 류큐 요리를 먹일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류큐 요리의특징이란
류큐 요리는 감칠맛이 있습니다. 특징은 육수를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이 돼지고기 육수이기도 하고 가다랑어 육수이기도 하지만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는것이 포인트입니다. 진하게 우려내어 가쓰오다시와 돼지 육수를 함께 사용합니다. 본토에서는 혼합 육수라고 하면 다시마와 가쓰오를 합친 것입니다. 즉글루타민산과 이노신산을 합친 것입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이노신산과 이노신산끼리 합침으로써 감칠맛이 나고 맛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볶음 요리를 할때 돼지 기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기의 감칠맛을 야채에 옮기는 요리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지쿠타(농후한 맛)가 되는 것입니다. 아지쿠타가 되니 야채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류큐 요리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육수입니다. 그래서 아지쿠타라는 것은 단순히 맛이 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농후한 맛, 여러 가지 맛이 어우러진 맛입니다. 아지쿠타로 완성되면 좋겠죠?
오키나와현의 식사 사정
지금 오키나와의 식생활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균 수명 수치도 좋지 않습니다. 남자는 43위, 여자도 16위까지 떨어졌습니다(2020년 기준). 사실수치가 이렇게 내려간 이유는 사람들이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채소 섭취량이 매우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는 최하위에 가까운 수준이 됐습니다.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지금 고기가 인기가 있는 건 알겠지만 육류에 너무 치우치면 과다하게 섭취하면 안 되는 지방과 염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억제해야 할 부분은 억제하고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하면서 오키나와현이 다시 한번 장수현이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지의 것을 평상시에 제대로 먹는다면 빨리 되돌릴 수 있을것입니다. 스스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만 먹으면 됩니다. 체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요리의 맛은 먹어보면 알게 됩니다. 먹어보지 않으면모르기 때문에 먹어보고 몸으로 익히는 체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든지 제대로 된 요리를 먹는다든지 맛있는 가게의 요리를 먹는 것도좋고 혹은 가족이 만들어 주는 음식으로도 맛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맛을 알게 하고 이제는 “맛의 전승”을 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입니다. 맛도 모르고 레시피만 보면 실제로는 제대로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습니다. 우선 돼지고기, 그리고 두부, 섬두부입니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해조류 모즈쿠와 아사, 츠노마타 등 다양한 해조가 채취됩니다. 그리고 야채는 섬 채소가 있습니다. 그런 식자재를 모두 사용하여 매 끼니, 매일 먹도록 하고 싶습니다. 직접 만든 음식은 맛도 좋고 조절하기 쉽습니다. 기름을 많이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은 적게 쓸 수있고 기름 종류도 지금은 종류가 많아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소금의 양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조절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직접 조리하고쉽게 할 수 있는것부터 직접 만들어서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대로 내 몸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조절하기 쉽습니다.
오키나와의 명절 음식
지금은 명절 요리 등도 간소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사용하여 매 끼니, 매일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과치과시(삼월과자)를 음력 삼월 삼짇날에 먹는다거나 아마가시(오키나와식 팥죽)를 궁과치구니치(음력 5월 5일)에 만든다거나 한 가지라도 좋으니 행사 때 행사 음식을 만들면 보급될 것이며 행사 음식도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찬합에 담은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접근하기 쉽고 먹기 편한 것이 소바(오키나와 소바)에 양념한 고기를 넣는다든지 무언가로 돋보이게 해서 다른 형태로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잘 될 것 같습니다. 보급되기 쉬운 것은 행사음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만 아이들은 양식을 먹고 싶어하고 파스타를 먹고 싶어할 것입니다. 류큐 요리에는 그에 가까운 것도 있습니다. 소민 푸투루 (소면 요리) 등입니다. 푸투루는 소면 삶은 국물을 조금 넣어서 완성하면 파스타에 가까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류큐 요리는 학교 급식에도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널리 보급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요리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투리를 점점 안 쓰게 됐습니다. 요리 이름도대부분 사투리이기 때문에 사투리도 함께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키나와 전체의 문제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키나와의 보물 류큐 요리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죠? 류큐 요리는 오키나와의 보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류큐 요리를 제대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많이 만들어 주시면 남습니다.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됐을 때 어딘가에서 끊어집니다. 끊어지지 않게, 없어지지 않게 모두 함께 좋은 형태로 남길 수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먹도록 합시다. 그러면 남으니까 맛있게 만들어서 먹읍시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다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행복한 좋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 맛을 맛있다고 느낄 때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누구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맛있는 것을 먹고 있을 때의 마음이 편해지는 그 순간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스스로 맛있다고 느낄 때 힐링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힐링이 되는 그런 것을 맛보고 싶습니다. 몇 번이고 얼마든지 맛보고 싶습니다.